2020년 10월 22일 목요일

중립한국 제9화) 경찰서에서

 중립한국 제9화) 경찰서




나는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게 되버린
토마스 목사님과 유성이를 도와주려고,
경찰서로 따라가게 되었다.

"왜 외국인이 우리 국내에서 마찰을 일으키는가?
일본인을 도발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소요 사태를 유발하는 짓은 하지 마시오!"

경찰서장은 토마스 목사님을
서장실에 데려와 앉혀놓고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취조하듯이 훈계하였다.

하지만, 무엇이 특별히 불법이라든가
그런 소리는 전혀 하지 않았다.

"왜 교회에서 예배를 하는 것이 도발입니까?"
"크리스마스 예배는 우리 교회에서 매년 하던 것입니다.
서장님도 잘 알고 게시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법을 어긴 것이 있습니까?"

위압적인 서장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토마스 목사님은 의연하게 대응하였고,
나 역시 거들면서 교회에서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이
일절 없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패싸움이 일어났는데, 불법이 아니면 된다는 말인가!"

서장은 화를 내며 위협하기는 했으나,
역시 어떤 법을 어겼는지 지적하지는 못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경찰서장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막무가내로 목사님을 잡아온 것이었다.

흥아회와 일본인들의 소요가 크게 번지는 것을 염려하여,
소요 사태의 책임을 미국인 목사님에게 떠넘기려는 것이었다.

"도대체 서양인들이 왜 우리나라에 와서
쓸데없이 일본인들과 다투고 있는 것인가?!
중립국이라 해서 주변 온갖 나라에서
피난민이 잔뜩 몰려오고 있으니,
요즘 우리 경찰이 아주 골치가 아파!"

경찰서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마구 화를 냈지만,
결국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명확하게 지적하지는 않았다.

우리 대한제국의 법률은 명쾌하고 공정하여,
어느 나라의 법률과 비교하여도
흠잡을 데 없고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설사 경찰이라 하여도 죄 없는 사람을
함부로 가두고 벌을 줄 수는 없었다.

"당신은 소요 사태에 책임이 있으니, 반성하도록 하시오!"

한동안 화를 내던 경찰서장은
서장실에 목사님과 나를 남겨놓고 떠났다.

"서장은 폭력 사태가 벌어지니까
혹시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될 것이 두려워서
목사님을 잡아와서 문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이 법을 어긴 것이 없으니,
오래 잡아두지는 못할 겁니다. 안심하세요."

식은땀을 흘리며 불안해하는 토마스 목사님에게
나는 영어로 작게 속삭여주며 안심시켜 주었다.
토마스 신부님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아. 마치 빌라도와 같은 자로군요."

로마 장군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교 제사장들의 무고와 성화 때문에
예수님을 붙잡아서 매질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것을
연상케 하여 언급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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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예배를 보더라도, 마찰이 없도록 하시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서장은 한 바탕 훈계를 늘어놓은 다음,
토마스 목사님을 풀어주게 되었다. 불법한 일이 없으니,
경찰이라고 해도 붙잡아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선배님. 목사님은 괜찮으십니까?"
"그래. 별 혐의 없이 풀려났다. 너는 괜찮냐?"

목사님과 함께 서장실에서 나오자,
유성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성이도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오히려 유성이에게 시비를 걸었던
술주정뱅이 흥아회원이 유치장에 들어가 있었다.

다만 흥아회원들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 청년부 몇몇도 함께
유치장에 있어서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여기 바우 형이 저와 같이
유도 도장에 다니던 선배라서,
조사를 공정하게 해주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바우라고 합니다.
하하, 밤늦게 피곤하게 오고가게 해서 미안합니다."

최바우라는 경찰은 덩치가 곰처럼 컷다.
솥뚜껑처럼 두꺼운 손아귀를 내밀어 오길래
나는 바우 씨와 악수를 나누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유도 3단으로
경찰에 특채되었다면서요? 최형 이야기는
예전에 유성이에게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경찰은 강도나 도둑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무술(武術) 실력이 뛰어난 학생을
경찰로 선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도나 유도를 잘 하는 학생들이
특채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성이의 유도부 선배가 경찰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었지만,
마침 이렇게 때마침 담당 경찰이 되어
도움을 받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하하. 타고난 힘과 덩치가 좋았을 뿐이죠.
그런데 유성이는 저쪽에서 먼저 때렸다고 하니까
정당방위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만,
패싸움에 말려든 다른 사람들은
합의가 없으면 처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쪽에 상대측 단체 사람도 와있으니
함께 합의를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최바우 경관은 원만하게 합의를 보라고 권유하였다.

'합의라….'

나는 솔직히 싸움을 말리다가 일방적으로 맞았을 뿐이라
나 개인이었다면 합의를 보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흥아회원이라면 모를까, 교인들 가운데 여럿이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은 많이 꺼려졌다.

"박 군. 이거, 미안하게 됐네. 사태가 이렇게 되다니…."
"야마무라 군. 자네가 책임자로 온 것인가?"
"내가 흥아회의 청년단장이니 당연하지."

최바우 경관이 합의를 보라고 만나게 해준
상대방 가운데는 야마무라 군과
몇몇 흥아회 간부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흥아회 쪽에서도
나와 친한 야마무라 군을 시켜서 
합의를 볼 수 있도록 권유하려는 것 같았다.

"자네를 때린 것은 이 스즈키 군인데,
착각해서 때렸다고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네.
부디 용서해주게나."
"스미마셍. 스미마셍. 제송하므니다."

야마무라 군의 옆에서 수갑을 차고서
나에게 고개를 숙이는 스즈키(鈴木)라는 청년은
이제 막 약관 전후쯤 되는 나이로 보였다.

스즈키는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있었고,
식은 땀까지 흘릴 정도로 겁에 질려있었다.

"박 센세. 스미마셍데시다.
제발 용서해주시므시오."

스즈키는 서툰 한국말로
계속해서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어째서 이렇게 겁을 먹고 있는지,
내 쪽이 도리어 놀라울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비교적 담담하게 있는
우리 쪽 교인들과는 달리
유치장에 갇힌 흥아회원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울상이 되버린
표정이 적지 않게 보이고 있었다.

특히 일본 복장을 하고 있는 자들은
완전히 초죽음이 된 모습이었다.

"목사님하고 이야기를 좀 해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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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흥아회원들이
풀이 죽은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최바우 경관이 나에게
숨겨진 사실을 알려주었다.

"저 스즈키라는 놈. 징병도피자입니다."
"징병도피자? 그럼 징병을 피해서,
일본에서 한국으로 도망왔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젊고 멀쩡한 놈이라
수상하게 여겨서 조금 떠봤더니
저렇게 벌벌 떨더군요."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시작한 이래,
많은 육군 병력이 필요하여,
징병이 강화되었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일본에서도
만 20세가 된 남자들은 군인에 적합한지
신체건강을 조사하는 징병검사를 받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그 검사 결과를
갑종(甲種)·을종(乙種)·병종(丙種)의
3단계로 나눠서 구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징병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갑과(甲科)·을과(乙科)·병과(丙科)·정과(丁科)로 나누는데
이름만 조금 다르지 그 운용방식은 대체로 비슷하였다.

모두 군사강국으로 이름난
독일·프로이센의 예비군 군사제도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본래는 일본나 우리나라에서나
징병검사의 등급이 높은 자만,
그것도 추첨을 하여서 일부만
현역으로 입대하게 되었고,
나머지는 예비군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중국에서 전쟁이 길어지면서
병력의 수요가 많아지게 되어
본래는 예비역으로 빠지던
을종(乙種)까지 징병을 하게 되었고
징병이 차례차례 이어지자
전쟁을 하러 나가는데 두려움을 느껴
우리나라로 도피한 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과 항로가 이어져 있어서
배만 타면 바로 도항하여 넘어올 수 있는
부산·원산에는 몇 년 전부터
일본인들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대부분 몸이 멀쩡한 청년들이었다.

일본 정부에서도 전쟁 와중에
병역을 도피하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염려하여
지금은 청년의 도항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일본 정부의 권력이 미치지 않으니,
이미 도항해버린 사람을 잡아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일본 정부에서
청년의 도항을 금지하였음에도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서
무역이 워낙 활발하다보니
상선을 이용한 밀항(密航)도 많았다.

밀항자를 포함한 징병기피자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지 않은 숫자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한국에서 처벌을 받아서
일본으로 송환되면 곧바로
징병되서 끌려갈 놈들이예요.
중국이나 말레이, 아니면
남양군도(南洋群島)로 가겠지요."

"일본에서 징병을 피해서 우리나라에 도망왔으면서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을 선동하고 있다니…. 쯧쯔."

"뭐 저들도 징병기피 때문에
내심 찔리는게 있는가 보지요. 허허."

최경관의 설명으로 사정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어처구니 없다고 혀를 차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토마스 목사님과
어떻게 해야할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목사님은 교인들을 설득하여
합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였다.

"합의로 넘어가자니 좀 분합니다.
우리 쪽이 잘못한게 크게 있는 것도 아닌데…."

유성이는 목사님이 쌍방간에
서로 화해하고 합의하자는
이야기를 하는걸 분하게 여기고 있었다.

젊고 혈기왕성한 성격이니,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폭력 사태에 휘말린 것을
분통하게 여길 것이다.

"유성 군.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예예. 알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따라야지요."

하지만 목사님이 설득하자 유성이도 곧 마음을 돌렸다.

유성이는 신앙심이 느슨한 편인 나와는 달라서
신앙심이 매우 독실하였고,
또 목사님을 많이 존경하기도 하였다.

결국 쌍방 간에 문제를 삼지 않는 것으로 하고
우리들이 유치장에 있는 교인들에게 설득하여
교인들도 합의를 하는데 동의하도록 하였다.

나는 서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야마무라 군과 악수를 했고,
토마스 목사님도 흥아회의 간부와 악수를 하며
집단으로 화해를 하기로 하였다.

"앞으로는 경찰을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이렇게 화해를 하고 서장에게
엄하게 훈계를 다시 받은 다음
경찰서에서 모두 풀려날 수 있었다.

별 탈이 없이 경찰서에서 나온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 날에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정말 곤혹스러운 하루였다.

"목사님. 지금 미국과 일본이 싸우고 있는데,
그래도 저런 친일단체에게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다니.
예수님 가르침에 따르면 그것이 옳겠습니다만,
그럼 미국이 불리해지지 않겠습니까?
경찰에서 저들을 잡아가게 하는게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박 군. 물론 나도 우리 미국에 애국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실리적으로 따지고 본다면,
저들이 일본으로 추방된다면 일본 군대에 징집될텐데,
그러면 미국과 싸울 일본군이 더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아 과연. 듣고 보니 맞는 이야기군요."

토마스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고 이치에 맞았다.

일본인 병역기피자가 우리나라에서는 골치덩어리였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군의 병력이 줄어드는 것이니,
크게 나쁜 일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라마다 제각기 사정이 다르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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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소설이 본업이 아니라서 전개가 좀 느린건 양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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