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중립한국 제7화) 크리스마스 2

중립한국 제7화) 크리스마스 2




크리스마스 저녁에 엄숙한 분위기에서 예배하는 교회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들려올 정도로,
일본인 거류지 쪽에서 마쓰리(祭り,축제)를 열면서
떠들석하게 있으니 기분이 묘하였다.

시끄러운 소리는
자꾸 교회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는데,
마치 의도적으로 교회에 들리게 하려는 듯이
지나치게 시끄럽게 축제를 열어 방해가 될 정도였다.

교회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욱일기(旭日旗)를 흔드는 일본인들이나
흥아회(興亞會)라는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이
까맣게 모여들어서 교회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전의 태평양 전쟁 개전일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우발적으로 모였던 그 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경찰에도 일본인 거류지의 대표들이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경사스러운 축제로서
허가를 받고서 집회를 여는 것이기 때문에,
폭동이 아니므로 해산을 시킬 수 없었다.

교회 주변에 모여든 일본인들은 때때로
「서양인은 아시아에서 물러나라」
「귀축영미를 타도하라」「외국인은 나가라」고
‘일본어’로 크게 소리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만담 하는 것도 아니고…."

위협적인 기세이기는 했으나, 구호를 듣고서는
쓴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교회에 서양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인들 가운데 대부분은 한국 사람이고,
우리 한국땅에서는 저들도 외국인인데,
「외국인은 나가라」는 구호는
아무래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일본인들이 뭐라고 소리 지르는 거죠?"

저녁 시간 예배를 끝마치고 나서도
교회 밖을 일본인 무리가 둘러싸고 있어서 
교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교회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어로 외치는 구호 때문에,
우리 교회의 교인들이나,
교회에서 머무는 외국인들이
불안해하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외국인은 나가라고 소리치고 있군요."
"점마들 그럼. 여기가 우리나라인데,
우리더러 나가라는 거요? 돌았나."
"망할 왜놈들. 전쟁에서 좀 이겼다고,
온 아시아가 저들 땅인줄 아나."

내가 의미를 풀어서 이야기 해주자,
교인들은 굉장히 불쾌하게 여겼다.

"공격해오는거 아닙니까? 교회가 안전할까요?

우리 교인들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홍콩을 탈출해온 외국인들은 특히 불안하게 여겼다.

전쟁터에서 빠져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렇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무리에 둘러쌓여
소란스러운 구호를 듣고 있으니 불안해질 것이다.

"경찰에서 보호해주고 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중립국에서까지 일본인들이 행패를 부리겠습니까?"

나는 경찰이 교회를 보호해주고 있다고 말하며
불안감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했다.

경찰서에서는 일본인들의 집회를 허가하였지만,
충돌을 우려하여 주변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으며,
교회 주변에도 경찰 몇 명이 순찰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본에 가까운 나라에 오는게 아니었어."

나는 경찰이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설득했지만,
하지만 제임스 에반스 씨는 머리를 감싸쥐고 탄식하고 있었다.

이곳 동래부 부산시에서는 날씨가 좋으면
바로 바다 건너에 있는 대마도를 볼 수 있으니,
일본의 바로 코 앞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국군이 지키고 있던 홍콩이
일본군에 침공받아 무너지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았던 에반스 씨로서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에반스 씨에게는 부산이 언제라도
제2의 홍콩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버지. 영국 신사다운 모습을 보여주셔야죠."

오히려 의연한 것은 에반스 씨의 따님인 릴리 에반스 양이었다.

여학교에 다닐 나이의 젊은 처녀임에도,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고,
방금 전까지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능숙한 솜씨로 성가 반주를 하고 있었다.

릴리 양은 에반스 일가에서 제일 먼저
토마스 목사에게 교회에서 무엇인가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며
자진하여 나섯다고 한다.

"본국 런던도 나치스의 폭격을 받고 있어요.
독일의 유보트 때문에 식량배급도 어려워서
아이들까지도 굶주리고 있다고 하잖아요.
세계의 어느 나라든 전쟁에 휘말리고 있는데,
중립국 코리아는 지금 세계에서는
가장 안전한 곳 가운데 하나죠.
우리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하느님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예요."
"오. 릴리…. 그래. 네 말이 맞다."

릴리 양은 의연하고 강인한 처녀였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에반스 씨를 격려하고 있었다.

지금은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전쟁에 휘말렸으니,
우리나라 같은 몇몇 중립국 만큼
안전한 곳은 달리 없을 것이다.

"박 선생님. 지금 밤도 늦었는데
이렇게 언제까지 교회에
갇혀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들(아이들) 집에 가서 잠도 재워야 하는데.
이걸 우짤면 좋습니까?"

"제가 일본인들하고 안면이 좀 있으니,
먼저 나가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시간이 늦어지고 있는데,
흥분하여 날뛰는 일본인들 때문에
교회에 격리되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교인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예배도 끝났기 때문에, 모두
빨리 귀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바깥에서 교회를 둘러싸고
소란을 일으키는 시점에서 

나는 토마스 목사에게 가서
집회를 벌이는 일본인들에게
교인들의 안전한 귀가를
교섭해보겠다고 하였다.

교인들의 귀가 안전 문제로
곤경을 느끼고 있던 토마스 목사는
나에게 꼭 부탁한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교회 청년부의 청년 둘을 데리고
교회 뒷문으로 조용히 나가서
교회 주변을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교인들이 이만 귀가해야 하니
잠시 일본인들과 대화하여
길을 비켜주게 해달라고
요청 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경찰이 응낙하자 나는
일본인들이 집회를 벌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집회에 가까이 가보니, 일본인 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있었다.

서양식 옷을 입고 있으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겉모습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저고리나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도
집회 인원들 사이에 제법 많이 보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 집회는 흥아회에서
조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야마무라 군이 흥아회에는
우리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참가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었으니, 아마 이 집회에 참가한
한국 사람들은 흥아회 소속일 것이다.

나의 눈에 「흥아회(興亞會)」라고
세로로 쓰인 큰 깃발을 흔들고 있는
야마무라 군의 모습이 뛰었다.

야마무라 군은 흥아회의 청년간부라고 하니,
교섭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야마무라 군. 저녁은 먹었는가?"

"아니? 박 군이 아닌가? 박 군도
황태자 전하 탄생 축제에 참가하러 왔는가?"

야마무라 군은 나를 보고 매우 반가워 하며
축제에 참가하러 왔냐고 물어보았다.

"음. 나는 방금 전까지 교회에서 예배에 참가하고 있었네.
축제 인파 때문에 교인들이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좀. 길을 터주지 않겠나?"

"아니. 박 군은 아직도 교회에 나가고 있었는가?
우리 흥아회에는 교회를 그만두고 온 사람도 많다네.
서양 종교에 더 이상 흥미를 잃었다고 하더군."

야마무라 군은 히죽 웃으면서 반문하였다.
그러고보니, 집회에는 교회에서 보았던 듯한
낯이 익은 얼굴도 몇몇 보이고 있었다.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나도 교회에서 미국과 영국 등, 서양 열강들이
일본군에 쉽게 무너지는 나약한 모습에 실망하여,
신앙심이 흔들린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나라의 국력과 신앙심이란 따지고보면 별개이겠지만,
미국인이나 영국인 선교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란 곧 미국, 영국을 상징하였다.

미국과 영국이 전투에서 연패하여
아시아에서 쫓겨나듯이 물러나게 되고,
그러자 교회에 다니는 것이 그다지
이득이 되지 않게 느껴지게 되어,
교회에서도 멀어지게 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토마스 목사님이 내 은사(恩師)이시니,
내가 어떻게 쉽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교회에는 저녁 예배를 온 사람들과
어린이들도 많이 있으니, 귀가할 길을 좀 터주게."

나는 선교를 하러 왔던 토마스 목사님에게
영어(英語)를 배웠고, 그 이래로
토마스 목사님을 은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의리가 있어서 버릴 수 없다는 사정을 이야기 했다.

"흠. 우리 쪽에서는 위협할 생각은 없었는데.
귀가한다면 길을 터주도록 하지."

자기네 세력(勢力)이 큰 탓인지
야마무라 군의 태도는 평소보다 훨씬
으스거리면서 잘난 척 하는 모습이었다.

"음. 고맙네."

야마무라 군의 태도는 조금 거슬렸지만,
귀가 문제에는 호의적인 답변을 얻어낼 수 있었다.
집회를 주도하는 흥아회 측도 귀가하는 교인들을
가로막을 명분은 없었던 것이다.

"집회하는 쪽에서 귀가해도 좋다고 하니
이제 돌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크게 염려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박 선생. 일본인들이 저렇게 흉흉한데 그냥 나가도 되겠소?"

나는 교회에 돌아가 잘 풀렸다고
교섭 결과를 전달했으나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청년부 인원들이 호위를 하겠습니다."

청년부에 소속된 '백유성'이라는 청년이
청년부의 청년들을 데리고 앞으로 나섯다.
교회 청년부에는 건장하고 혈기있는 청년들이 많았다.

청년부라고 해도 머릿수에서는 많이 밀리고 있었지만,
호위를 자처하러 나설 정도로 다들 혈기왕성 하였다.

"유성아. 괜찮겠니?"
"선배님. 뭘 걱정합니까. 까짓거. 덤비면 한 판에 메쳐버리면 그만이죠."

유성이는 나의 학교 후배로서
유도부(柔道部) 출신의 체육 청년이었다.
유도(柔道) 실력이 뛰어난 유단자였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만만 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폭력은 자제해라.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지 않느냐.
저쪽이 머릿수가 많으니 자극할 필요는 없어."
"예예. 그건 당연하죠."

다같이 귀가 행렬을 꾸리고 교회를 나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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