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1일 토요일

중립한국 제11화) 《북방(北方)의 선구자(先驅者)》





큰할아버지 댁이 마을에서 주름잡는 지주였기 때문에,
사랑채에는 마을 사람이나 친척들이 오고 가곤 했다.

자연스럽게 전쟁 이야기가 나오곤 했는데,
큰할아버지나 달평 당숙 뿐 만이 아니라,
시골 사람들은 대부분 일본에 부정적이었고,
중립정책에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군들이 중국에서
사람 목을 누가 많이 베는지
서로 겨루고 있다며?"

"에이구. 무서워라."

"우리나라는 중립국이라 정말 다행이야.
전쟁 같은게 있어봐. 이렇게 설날에
친척끼리 모여서 지낼 수도 없지."

그렇다고 중국(中國)이나 영미(英美)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지금의 세계 정세가 연합국과 추축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으니 한쪽을 편들면
필연적으로 반대편과 싸우도록
되어 있다는 것은 무식한 사람들이라도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개화가 된 지
이제 몇 십년은 되었지만,
고향 마을 같은 산 속 시골에서는
아직도 배외(排外)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골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리가 어떻게 되었든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나라와
힘들여 전쟁을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농촌에서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하면 징병이 필수가 되는데,
외국과 얽혀서 전쟁을 하게 되면
일손이 될 장정을 빼앗기게 되므로
소농가(小農家)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일가의 생활이 걸린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큰할아버지 같이 지금도
시골에 남아 있는 유림(儒林) 인사는
대부분 농촌의 지주(地主)이기도 했는데,
농장 경영에 필요한 노동력을
군대에서 징병해가는 전쟁은
지주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유림들이 모여서 결성하
보수 정치단체인 대동회(大同會)에서는 
과도한 전쟁과 군비는 민생 파탄을 부른고,
공자(孔子)·맹자(孟子)의 말을 인용하면서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논평을 자주 내곤 했다.

큰할아버지는 참가하지 않았고,
유림 인사들이라고 모두 가담한건 아니지만,
대동회는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이라,
정부 정책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큰할아버지 댁에도 대동회에서 발행하는
대동시보(大同時報)라는 잡지가 놓여있었는데,
심심풀이 삼아서 잠깐 펼쳐보았더니,
온통 한문(漢文)에 그림이나 사진은 없고,
사설 투성이라서 굉장히 읽기 어려웠다.

'정말로 재미가 없군….'

나는 일본어(日本語)도 할 줄 알고,
한자(漢子)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문으로 된 사설이나 한시(漢詩)가 대부분이라,
대동시보는 도무지 읽기 어려운 잡지였다.

낡은 잡지보다는 차라리
방문 밖에으로 보이는 경치가 더 볼만하였다.

산골짜기 마을이라 그런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산풍경은 아름다웠다.

골짜기 사이에 있는 초라한 초가집도
눈이 그 위로 쌓이니 정취있게 보였다.

"아이고! 도련님!"

내가 멍하니 산이나 바라보고 있을 때,
마당의 눈을 싸리비로 쓸고 있던
행랑아범이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질러서
그쪽을 한 번 돌아보았더니,
한 청년이 말을 타고
대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시는 시간을 알려 주셧으면,
제가 역까지 마중 나갔을텐데."

"눈도 오는데 뭘 나오려고 그래요."

행랑아범은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
말을 타고 온 청년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 청년은 바로
군인(軍人)이 될 뜻을 품고
사관학교에 들어갔다가 얼마전에
장교로서 임관하였다는
큰할아버지댁의 친척동생 의찬이였다.

갈색 군마(軍馬)를 타고,
검은색 군복(軍服)을 입은
의찬이의 모습은 아주 멋이 있엇다.

"의찬이냐. 와. 너 멋있어 졌구나."

어렸을 때는 코를 질질 흘리면서
흙투성이로 뛰어다니던 꼬마애였는데,
지금은 키도 훤칠하게 자랐고,
어깨도 쩍 벌어져서 체격이 좋았다.
정말 몰랍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형님. 오셧습니까? 충성!"
"아, 그래. 충성."

의찬이가 군대식으로 경례를 하자,
나도 일단 군대식으로 받아주었다.

"아이고. 우리 손자 왔구나."

큰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주름진 얼굴로 활짝 웃는 모습이
안동의 명물인 하회탈처럼 보였다.

나나 달호 삼촌이 찾아왔을 때의
어딘지 시큰둥한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의찬이는 큰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손자였다.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장교가 되었기 때문에,
옛날 같으면 무반(武班)이라며 좋아하였다.

우리나라에 사관학교(士官學校)로는
육군(陸軍)과 해군(海軍) 사관학교가 있는데,
의찬이는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는데,
사관학교에서 헌병학교로 뽑혀가서,
지금은 헌병장교가 되었다.

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헌병대(憲兵隊)는 특히 어려워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게 아니었다.

성적과 체력 뿐만이 아니라
키가 크고 신체조건에 문제가 없어야 하며,
본인의 태도와 행실 뿐 만이 아니라,
가까운 친족의 행실까지 살펴본다.

헌병대는 군대의 질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기병순찰대는 북방에서 마적(馬敵)을 토벌하였고,
황실근위대는 황실과 관련된 궁궐(宮闕)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성심도 중시하였다.

옛날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큰할아버지는
돈보다는 권위와 명망을 더욱 중요시하는 분이라,
자신의 손자인 의찬이가 장교가 된 것을
더욱 기뻐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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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찬이가 타고 온 군마는
외양간에 데려다 묶어놓았고,
의찬이는 큰할아버지에게 절을 올렸다.

"무관복(武官服) 입은 모습이 참 보기 좋구나."

큰할아버지는 손자의 군복 입은 모습을
대견하고 뿌듯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의찬이가 입은 장교 정복(正服)은
내가 입었던 일반 육군 병사들의 군복보다
여러모로 화려하고 멋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검은 군복에는 금색 단추가 두 줄로 달려 있고,
팔에는 황색실로 이화문(李花紋) 형태를 수놓아,
디자인이 화려하면서도 품위가 있었다.

거기에 군도(軍刀)와 권총(拳銃)을 차니
막 임관한 초급장교였지만 장교다운 위엄도 있었다.

그런데, 네 품계(品階)가 어떻게 되느냐?"

"참위(參尉)입니다. 이제 막 임관했으니까요."

참위(參尉)는 장교계급 가운데 가장 아래이다.
참위(參尉) 위로는 부위(副尉)·정위(正尉)이며,
또 그 위로는 영관(領官), 장관(將官)이 있어,
참령(參領)·부령(副領)·정령(正領)과,
참장(參將)·부장(副將)·정장(正將)·대장(大將)이 있다.

"그래그래. 임관했으니 품계는 차차 올라가겠지.
황상폐하(皇上陛下)께 충심을 바치도록 하고.
또 몸 건강히 잘 지내도록 해라.
네가 우리 가문의 자랑이다."

큰할아버지는 오랫동안 덕담(德談)을 하였다.
장교가 된 손자가 그렇게나 좋으신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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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말이다!"

큰할아버지 댁에는 시골에서 사는 어린 친척 조카나
귀향한 친척이 데려온 아이들도 많이 있었는데,
남자애들은 의찬이가 타고온 군마(軍馬)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얘들아 말한테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
뒷발에 걷어차일 수 있어."

의찬이는 군마에 가까이 가려는 조카들을 저지했다.
성질이 온순한 소와는 다르게 말은 성질이 민감해서,
애들이 곁에서 시끄럽게 떠들면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에이. 피-"
"말 타보고 싶은데."
"대신에 이거 볼래?"

그래도 애들이 말에서 호기심을 거두지 못하자,
의찬이는 권총을 꺼내서, 약실에서
총알을 모두 제거한 다음 보여주었다.

"우와! 총이다!"
"이거 만져봐도 돼요?"

의찬이가 보여준 권총을 보고는
눈을 반짝거리며 흥미를 느꼈다.
금새 흥미가 권총으로 옮겨간 것이다.

권총은 내가 잡지 사진에서 보았던
독일제 모제르(Mauser) 권총하고
비슷하게 생겼다.

"이건 모제르 권총인가?"

"아니요. 국산(國産) 갑인권총(甲寅拳銃)입니다.
우리 조병창(造兵廠)에서 만든 것인데,
겉은 비슷하게 보여도, 내부 구조는
좀 더 신뢰성 있게 만들어서 다르다는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독일 모제르 권총과 비슷하게 생겼고
총 손잡이에 붙은 놋쇠 이화문을 제외하면
내 눈으로 보기는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내부 구조가 다른 국산 이라고 하였다.

"이 갑인권총이 성능이 좋고 튼튼하다보니까,
중국이나 일본에도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일본 장교들도 남부 권총(南部拳銃)보다
더 낫다면서 사가기도 한대요."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권총 같군."

나도 군마(軍馬)와 권총을 보니,
예전에 보았던 '북방개척영화'가 생각났다.

《북방(北方)의 선구자(先驅者)》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우리나라 농민들이 간도에 가서 개간사업을 하는데,
머리를 박박 밀고 변발을 땋은 중국인 마적단(馬敵團)이,
세금을 바치라고 위협을 해오고, 급기야 부녀자를 납치하자,
마을 청년들이 나서서 흉악한 마적단과 싸운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 군대의 기병대(騎兵隊)가 지원하러 나타나,
마적단(馬敵團)을 토벌(討伐)하였는데, 실제 군 기병대의 지원을 받아,
마상에서 권총을 사격하거나, 군도를 휘두르고, 쇠도리깨로 치는 등.
미국 헐리우드에서 만든 서부 영화에서도 별로 볼 수 없었던,
멋들어진 무술 장면이 많이 나왔던 것이 인상이 깊었다.

"삼촌! 우리 마적쫓기 놀이 해요!"

애들도 권총을 보고 연상했는지 마적쫓기 놀이를 하자고 졸라댔다.
마적쫓기는 패를 나눠서 하는 전쟁놀이나 총싸움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애들은 제각기 나뭇가지와 장난감총을 들고와서
총이네 칼이네 하면서 입으로 총쏘는 소리를 내고 흉내를 냈다.

애들이 졸라댄 탓에, 나도 의찬이도 어쩔 수 없이 끼어들어
눈밭을 뛰어다니면서 입으로 총쏘는 소리를 내며
어린애들처럼 뛰어놀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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