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6일 수요일

개척왕 수양 (2) - 남방으로

[창작] 개척왕 수양 (2) - 남방으로
ㅁㄴㅇㄹ(222.108) 03-05 01:32:08 조회 570 추천 24 댓글 14

수양대군을 돌려보낸 다음, 문종은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자신의 '살생부'를 적기 시작했다.



소위 '공신록'은 이미 암기하고 있었으며, 은밀히 그들의 행적을 조사하게 하여 역심을 품고 있는 자들을 골라낸 상태였다.





'많기도 하다. 이 녀석은 무슨 놈의 공신(功臣)을 4번이나 뽑았단 말이냐. 태조께서는 개국공신(開國功臣), 태종 할아버님도 정사공신(定社功臣)과 좌명공신(佐命功臣)을 뽑았을 뿐이거늘.'



'아무튼 공신이라고 거들먹 거리며, 조선을 좀 먹었던 벌레 같은 놈들. 내가 너희를 모두 조선에서 몰아내주겠다.'



그리하여 문종의 살생부가 완성되었으니, 이는 공신록을 그대로 뒤집은 것과 같았다.



대상은 수양대군의 찬탈과 직접 관련된 정난공신과 좌익공신 가운데 핵심인물들이었다.



첫머리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양대군이 올라가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다른 종친이 이어졌으니, 문종의 또 다른 아우인 임영대군과 영응대군이었다.



'임영대군은 음탕하고 여색을 밝히는걸 아버님께서 감싸주었는데, 끝내 불충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총통과 화차 제작을 감독하여 재주가 없는 녀석은 아니었거늘'



다음으로 세종의 서자 계양군 이증과, 익현군 이연 등의 종친이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공신이 되고 방탕하게 살다가 술을 지나치게 마셔 피를 토하고 죽었으니, 한심한 녀석들이다.'



그리고 정현옹주의 부마 윤사로, 정혜옹주의 부마 박종우 등의 종친이 올라갔다.



다음으로 문신으로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신숙주(申叔舟)·정인지(鄭麟趾)·이계전(李季甸)·정창손(鄭昌孫) 등이 올라갔다. 그리고 권람의 동생 권반(權攀), 이색의 손자 이계린(李季麟)과 이계전(李季甸), 최충의 증손인 최항(崔恒) 도 포함되었다.



'신숙주, 정인지. 이 자들이 배신할 줄이야….'



무신으로는 홍윤성(洪允成)·홍달손(洪達孫)·박중손(朴仲孫)·양정(楊汀)·곽연성(郭連城) 등이었다.



"본래 죽어 마땅한 역신들이지만, 아직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들을 명분 없이 죽일 수는 없다."



문종은 준엄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 이 자들이 분골쇄신하여 조선을 위하여 일하도록 만들 것이다."



...



몇달 뒤, 조선을 떠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커다란 세 척의 배가 있었다. 그 배에 타고 있는 수양대군은 허탈하게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단 말인가….'



본래 계획대로라면 조선의 권력을, 아니 보위에 올라서 조선의 왕이 되어야 할 몸이었으나, 지금은 그저 배를 타고 머나먼 남방으로 떠나는 표류자나 다름없는 신세였다.



"대군마마. 바닷바람이 쌀쌀한데 밖에 나와게십니까."

"아아. 한명회. 너무 답답해서 바람이나 쐬고 있었네."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그 모습은 평소의 자신만만하던 수양대군이 아니었다.



'이렇게 상심하시다니. 하긴 하늘이 내린 기회를 잃어버린 데다가 이렇게 바다에 나오는 처지가 되었으니 기이한 일도 아니겠지.'



교활한 책사 한명회도 자신들이 처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엄청난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문종은 수양대군을 은밀히 불러들여 독대를 하고 난 다음날, 갑작스럽게 기이한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과인의 모후께서 돌아가실 때 사당(沙糖)을 드시고 싶다고 하였으나, 제 때에 구하지 못하여 결국 영전에 바칠 수 밖에 없어 매우 원통하였다. 우리 조선땅에 나지 않는 물자가 많아 이처럼 곤란할 때가 너무나 많다. 그러니 이제 과인의 아우 수양대군을 멀리 남해의 섬으로 보내, 남방에서 나는 물자를 구하여 보내도록 할 것이다.]



여러 신하들이 반대하였으나 이미 문종은 거의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심지어 수양대군을 태우고 갈 배와, 수행할 문신과 무신의 명단까지 이미 만들어두고 있었다. 수양대군 본인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명을 받들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에게 못다한 효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시니, 주상전하의 은혜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조선에서 전례가 없는 남방개척이었으나, 이렇게 효(孝)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억지로 진행되고 말았다. 세종의 적장남으로 태어나서, 이미 세자 시절부터 오랫동안 대리청정을 하였던 문종의 권위에 신하들은 거스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은 남방항해에 동원된 수양대군과 수행원들은 사실상 유배를 떠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문종은 수양대군에게 엄명을 내려두었다.



[남방에 섬이 있으니 그곳에 가서 살아라. 다시는 조선 땅에 돌아오지 마라.]



문종이 수양대군에게 가서 살라고 한 것은 유구국(琉球國) 인근에 있는 섬으로서, 변변찮은 나라도 세워져 있지 않고, 문명을 제대로 모르는 토인(土人)들이 사는 땅이라고 하였다.



수양대군은 이제는 두 번 다시 조선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매우 비통하게 여겼으나, 문종에게 역심을 들킨 이상 이대로 조선에 있다가는 그야말로 역적이 되어 더욱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될 상황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목숨이라도 건진 것을 다행으로 알고 알지도 못하는 섬으로 항해를 하게 되었다.



'두고 보십시오. 형님.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망망대해를 바라보던 수양대군의 마음 속에서는 점차 오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본래 수양대군 역시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인물이다. 그저 바다로 추방당한 정도로 꺽일 정도로 나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 일단 대만으로 보내졌습니다.



하필 조선에서 제일 흉악한 놈들만 골라서 보낸 개척단이라니.



대만에서 이들이 무슨 행동을 벌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4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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