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6일 수요일

중립한국) 대한국 사략 개국독립전쟁(開國獨立戰爭) 3

 중립한국) 대한국 사략 개국독립전쟁(開國獨立戰爭) 3

ㅁㄴㅇㄹ(119.196) 2020.09.16 00:37:19조회 0 추천 0 댓글 0




3) 전쟁의 결말






전쟁이 시작되고 우리나라가 공격해오는 청군을 여러번 물리쳤다. 하지만, 식자들은 청나라가 번방(番邦)에게 패전하는 것이 치욕스럽다 하여 계속 싸우고자 한다면, 장차 국력(國力)이 부족하여 결국 패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평안도와 충청도에 상륙한 청군을 패퇴시키고 포로로 잡았으나, 청국의 북양함대(北洋艦隊)가 건재하여 황해에서는 약소한 우리나라 수군(水軍)이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또 농사철에 군대를 계속 일으키다보니 농사가 되지 않아 각지에서는 사창(社倉)의 곡식이 떨어져갔고, 식자들은 이대로 싸운다면 끝내 국력이 부족하여 나라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 염려하였다.




허나, 우리나라가 청국과 잘 싸우고 청국이 우리나라에서 서양 사람들에게 만행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영국·불국·덕국·오국·미국 등의 서양 열국(列國)에서는 청국을 비난하고, 우리나라와 화평할 것을 권유하였다.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식량과 무기를 팔아 주었으니, 크게 비싸기는 하였으나 전쟁 물자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일본(日本)은 우리나라를 내버려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패망한다면 청국이 장차 우리나라를 기반으로 삼아서 일본을 위협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조선과 일본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하여, 우리나라와 동맹하고 청국과 싸우자고 하였다.




우리나라 정부가 동맹제의를 검토하고 응답하기도 전에,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聯合艦隊)가 황해에 나타나서 청국 함대와 해전을 벌여 북양함대를 침몰시키고, 또한 대만(臺灣)에도 군대를 상륙시켜서 대만에서 청국 군대를 몰아냈다. 이는 이전에 청국 함대가 황해에서 일본 상선을 약탈한 것을 명분으로 하였으니, 일본의 행동이 전광석화처럼 빨라 모두 놀라워 하였다.




청국은 또 이전처럼 영국 상선에 군대를 태웠으나, 일본 함대가 영국 상선도 무단으로 격침시키고 몰살 시키자 내심 통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이에 우리나라가 일본과 동맹하여 싸우기로 하였으며, 아국 수군(水軍)을 보내서 연합함대(聯合艦隊)와 협동하였다.




일본이 끼어들자 청국이 놀라서 황해에서 함대를 물리게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황해의 조운이 자유롭게 되니, 삼남(三南)에서 군대와 물자를 모아 북쪽으로 보낼 수 있게 되어 평양(平揚)에 대군(大軍)을 모아 출진하였다.




마침내 우리 군대가 평안도와 함경도에 결집하고 출진하여 압룩강과 두만강을 넘어가 요동(遼東)·길림(吉林)을 쳐서 청군과 싸웠다. 청군이 요동에서 대패하였다. 요동까지 잡혀갔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많이 구출해왔다. 길림에서도 청군이 패전하여 북간도를 빼앗겼다.




바다에서는 북양함대가 우리 수군과 일본해군의 연합함대에 밀려서 천진(天津)으로 퇴각하였고, 일본 해군에서도 육전대를 내려 보내어, 마침내 요동이 몇 달 만에 모두 점령되었다. 이에 청국이 마침내 이기지 못하며 싸우면 해악이 더 커지게 될 것을 알고, 협상을 하고자 하였다.






4) 하관조약




이 때에 사람들이 청국이 우리나라를 공격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원통하겨 여겨, 계속 전쟁하여 연경(燕京)을 불태워야 한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여러 식자들은 국력(國力)이 부족하고 전쟁을 하느라 장정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있으니 농사가 되지 않아 오래 싸울 수 없다 하여 협상을 해야 한다 여겼다.




처음에는 청국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이 평양(平揚)에 와서 협상을 하기로 했는데, 평양의 백성들이 많이 모여서 [간신(奸臣) 이홍장(李鴻章)을 주살(誅殺) 하라]는 문구를 광목천에 크게 써놓고 행진하며 시위하였다. 평안도 군민(郡民)들 가운데 청군에 해(害)를 입은 사람이 많아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이에 평양의 민심이 불온하기 때문에 회담을 할 수 없다 하여, 일본의 항구 하관(下關)에서 협상을 하기로 하였으나, 하관에 도착한 이홍장이 소산 풍태랑(小山 豊太郎)이라는 일본인에게 권총을 맞아 크게 다쳤다.




"이홍장이 조선을 피하다가 일본에서 총을 맞았다."며 이를 매우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식자들은 이홍장이 다쳐서 협상이 청국에 유리해질 것을 염려하였다.




하관에서 청국과 우리나라 대표, 일본대표가 협상 하였다. 협상으로 청국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거액으로 배상을 하며, 우리나라는 독립국(獨立國)임을 인정하게 하였다. 또 일본에서 점령한 대만과 여러 섬들을 일본에 할양하며, 우리나라는 길림 남부의 북간도와 서간도를 청에서 할양받게 되었는데, 본래 이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건너가서 살던 땅이었다.




또 우리나라와 일본이 요동을 나눠서 할양받고자 하였으나, 서양 열국은 그렇게 하면 청국의 북경이 위협받는다 하여 저지하여 압력을 주었기에 요동에서 군대를 물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본조(本朝)의 이름은 조선국(朝鮮國)이었으나, 이 때 청국에 승리하여 완전히 독립국(獨立國)이 되었고, 청국에 칭신과 조공을 폐(廢)하였다. 칭제건원(稱帝建元)하고 옛 삼한(三韓)에서 따와서 우리나라의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정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나라가 개국하고 독립하게 된 전쟁이라 하여, 개국독립전쟁이라 하였다.




개국독립전쟁을 시작할 때, 청황제의 성지(聖旨)에 '조선의 국호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는 문장이 있었는데, 조선이란 국호가 없어지고 대한제국으로 바뀌었으니, 청황제가 전쟁을 일으킨 뜻이 사실이 되고야 만 것이라는 농담이 세간에 나돌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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