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4일 토요일

중립한국 제2회) 흥아회(興亞會)



많은 일본인들이 교회에 몰려와서 아우성치며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귀축영미 물러가라!"
"서양놈을 내놔라!"

일본어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저 일본인들은 단지 서양인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라는 이유로
적대감을 보이며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다.

미국이 공격을 받고 태평양 함대가 궤멸했다는 소식에다가,
갑자기 일본인들이 시위를 벌이며 공격을 해오자
크게 충격을 받은 교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목사님. 위험하겠습니다. 피신하십시오."
"하나님이 맡기신 어린 양들을 버리고 제가 어딜 갑니까?"

혹시 변고가 생길까 두려워서
토마스 목사에게 피신을 권유하였으나
토마스 목사는 자신에게 모여드는 교인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며 의연하게 대답하였다.

"제가 일본말을 할 줄 아니 한 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비케어풀(Be Careful). 조심하십시오. 팍 군."



'나'는 두고볼 수 없어서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그만 두시오! 사람이 있단 말이오!"
"빠까야로! 다마레!"
"닥치고 양놈을 내놔라!"

하지만 거칠게 반발하는 소리가 들려올 뿐,
일본인들의 폭동은 그치지 않았다.

다시 돌멩이가 날아들자,
나는 돌팔메질을 당하는게 무섭기도 하여,
실망감과 좌절감을 느끼며 창문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창문으로 날아온 돌멩이가 나무 의자에 튀어 흠집을 내었다.

"여러분, 다 같이 기도합시다."

교인들이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떠는 가운데
토마스 목사는 마치 순교를 각오한 듯이
눈을 꼭 감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삐익! 삐익! 삐익!"

그런데 그 때, 밖에서 시끄러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우리 조선 땅에서 왜놈들이 행패를 부리느냐!"

깨진 창문 너머로 살짝 바깥을 내다보니,
경찰들이 몰려와서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단순히 승전을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는 수준을 넘어서,
폭동으로 격화되는 조짐을 보이니까
마침내 경찰이 개입하였던 것이다.

일본인들도 과연 경찰이 나서자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무리가 흩어져서 일본인 거류지로 돌아갔다.

경찰들도 떠나는 일본인들을
굳이 쫓아가서 잡지는 않았고,
흩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디서 본 듯한 뒷모습인데.'

나는 문득 떠나는 일본인 무리 사이에서
야마무라 군의 모습을 본 느낌이 들었다.

경찰의 도움 덕분에, 교회는 큰 일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 --- --- --- --- ---

교회에는 토마스 목사가 경찰서장에게 부탁하여
경찰에서 자주 순찰을 돌아주고 있었고
교인들 역시 혹시 교회가 다시
공격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여
청년들이 조를 짜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하지만, 실망과 불안을 느껴서인지
갑자기 교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 교인도 있었다.

며칠간 부산에서는 일본인들이 기세등등하게
길거리를 다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됐을 뿐이지만,
이미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야마무라 군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 자신감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군사평론가가 말하기로는
미국이 궤멸된 태평양 함대를 재건하려면,
앞으로 10년 이상은 걸릴 거라고 하더군."

"그 동안 황군(皇軍)은 남방으로 출병하여
영불란(英佛蘭)의 식민지를 해방시키고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야."

"구주(유럽) 제국은 전쟁으로 본국도 잃어버렸고,
영국은 독일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으니,
식민지를 지킬 능력이 없겠지."

"함대 없이는 하와이도 고립된 섬이라서,
미군을 하와이에서 쫓아내는 것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군."

하와이를 타격한 야마모토 제독의 일격이
미일(美日) 간의 함대격차를 단번에 뒤집었고,
그러니까 일본의 승리는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야마무라 군은 이전에
'도고 제독'을 칭송했던 것처럼,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을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있었다.

야마무라 군은 이전부터 군기물(軍記物)을 좋아하여,
전쟁이나 군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즐겨하곤 하였다.

나는 군사에 관련된 것에는 본래 그다지 흥미가 없었지만,
야마무라 군이 흥미진진하게 설명하는 것은 재미있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로서 들으면서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대한군(大韓軍)이 이전 전쟁에서처럼
우리 황군(皇軍)과 동맹을 하고 나선다면
대동아 해방은 훨씬 쉽게 이루어질 텐데."

이야기를 하던 야마무라 군은
문득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부에서는 아무래도 중립평화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지."

일본이 개전과 함께 기습하여
하와이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우리 정부의 반응은 상당히 신중하였다.

작금의 어지러운 국제정서에
많은 세계인이 고통받고 있음을 통탄하며,
우리나라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中立)을 선언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중립화론(中立化論)은
우리나라가 문명 개화를 하던 광무(光武) 시절부터
식자들 사이에서는 뿌리가 깊은 주장이었다.

문명개화하여 우리의 실력을 키우되,
우리 쪽에서 타국에 전쟁을 걸지 말고,
타국의 전쟁에도 말려들지 말자는 논지였다.

그 시절에는 이상론이라 하여 비판을 받았지만,
지난 구주전쟁(歐洲戰爭)에서
영불에 대의(大義)가 있으니, 이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구주에 파병을 하였다가, 많은 사람이 사상한 뒤로는
특히 중립론을 주장하는 식자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허나 최근에는 작금의 국제정세에 맞지 않는
수구적이고 폐쇄적인 발상이라고 하여,
비판하는 식자들도 적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약육강식(弱肉強食)하였고,
강국은 흥(興)하고 소국은 망(亡)하는 것이
분명히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냉엄한 현실인데,
중립론(中立論)·평화론(平和論)은
결국 나태한 이상주의일 뿐이란 것이다.

야마무라 군 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인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전론이 많이 팽배하고 있었다.

[독일이 지금 강성하여 프랑스는 무너졌고,
영국(英國)은 풍전등화와 같으니,
과거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처럼
히틀러 총통이 구주를 지배할 것이다.
소련(蘇聯)의 패망은 곧 눈에 보이고,
미국(美國)도 어찌할 수 없을 텐데,
지금 군사를 일으키지 않으면
전후에 패전국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주장이었다.

"중립평화론은 낡은 생각이야.
많은 조선인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더군.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모임을 만들기로 하였네."

"모임이라니?"

야마무라 군은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흥아(興亞)"라고 써진 작은 깃발을
자신의 품에서 꺼내서 보여주었다.

"얼마 전에 몇몇 사람들과 만나서 모임의 이름을
[흥아회(興亞會)]라고 지었네.
아직 정식으로 발족하기는 전이지만,
참여하겠다는 사람이
조선인·일본인을 가리지 않고 많아.
아세아(亞細亞)를 백인에게서 해방하고
대동아(大東亞)를 흥성시키자는 뜻을 담아서
흥아회라는 이름으로 하였다네.
박 군도 참가하지 않겠는가?"

나는 벌써부터 이런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구나 하여 깜짝 놀랐다.

"생각은 해보겠네만, 나는 상사(商社) 일이 바빠서 힘들 것 같아."

"흥아회에 들어오면 박 군의 상사(商社)에도 많은 도움이 될거야.
많은 사람이 모이고 있으니, 박 군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맥이 많지 않겠나."

야마무라 군은 반드시 나를 흥아회에
끌어들이고 싶다는 듯이 여러번 권유를 하였다.
나는 어느 정도 여지를 두면서도,
권유에는 쉽게 승락하지 않았다.

야마무라 군 앞에서는 혹 남아(男兒)답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
이야기 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심으로는
역시 아무래도 군대(軍隊)라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군사 훈련도 그렇게 힘든데,
전쟁을 하는 것은 못할 짓이지.'

나 역시 대한남아인 만큼,
병역이 할당되어 징병검사를 받았고,
예비역으로 판정받아 훈련을 마쳤으며,
예비군에 등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총을 들고 행군을 하며,
총검술을 익히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는데,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문약(文弱)하다 할지도 모르지만
어렵고 힘든 일보다는
'모던'하고 '인텔리'한 것이 나의 성향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