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7일 금요일

1994 통일 (1)



6월 25일. 625 기념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연설은 자뭇 비장하였다.


북한 핵위기가 고조되면서, 미군은 속속들이 추가 배치되고 있었고,


이미 미군이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의 전쟁준비에 협력하는 상황이었으며,


미국인을 시작으로 각국의 외국인들은


각국 정부가 준비한 비행기와 군용기를 타고


김포공항과 김해공항에서 속속 해외로 출국하고 있었다.




"우리 국민 여러분. 우리는 민족중흥과 통일대업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전선'에서 도망치는 적전 도주자는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것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연설은 이 와중에도 몇몇 부유층과 사회 지도층이


본인 혹은 가족이 해외로 피난하였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이미 긴급명령으로 해외도피를 처벌하겠다고 선언하였고,


대국민선언으로 이를 더욱 명확하게 하고 있었다.




정부의 사재기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시내의 슈퍼에서는 쌀과 라면이 모두 떨어질 정도로 사재기가 만연하고 있었다.


매점매석을 하던 유통업자가 적발되었다는 소식도 연일 뉴스에 나고 있었다.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으며,


벌써부터 시골로 피난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생계 때문에 피난가지 못하는 사람들 조차도,


적어도 아이들만이라도 피난시키려 했기 때문에,


서울의 학교들은 교실의 절반이 텅텅 비었다.




파주에서 일산에 이르는 전방 지역은 더욱 심각해서,


등교해야 할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져버린 탓에,


학교가 거의 마비되어 임시방학이나 휴교가 선언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625 기념 대국민담화가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나


만식은 자가용 자동차에 가족을 태우고


남부지방에 있는 아이들 외가집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난리가 나도 크게 나겠군."




고속도로에는 명절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차들이 몰려 있었다.


명절 귀성민이 아니라 시골로 가는 피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여보. 정말 전쟁이 나겠어요?"


"나도 괜히 호들갑 떠는거면 좋겠지만. 미군까지 온다고 하잖아."




만식의 아내, 순임은 친정에 가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만식은 이러다 전쟁이 터질 것 같으니,


일단, 아이들하고 친정에 가있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마. 상황이 더 안좋아지면 나도 시골에 내려갈게."


"그렇지만, 이러다 이산가족 되면 어떻게 해요?"


"에이. 그런 재수없는 소리는 하지마."




만식은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 떠날 수 없다고 해도


가족끼리 떨어지는 것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아! 외가집이다!"




'국민학생' 서준이는 전쟁이 터질 상황인데도


갑자기 '이른 방학'을 맞이해서 놀 수 있게 됐고,


외가집에 가게 되어서 은근히 기뻐하고 있었다.




서준이의 외가집은 농촌 마을에 있었다.


이미 연락을 해두어서,

서준이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반갑게 서준이네 가족을 맞이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래. 뭐 큰 일이야 있겠나."


"잘 돌봐줄테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게."




처가집에 도착한 만식은 잠시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만식은 점심만 먹고 그날 내로 서울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예? 처제 식구도 온다 그래요?"


"그려. 죄다 시골로 온다 그러드라."


"옆집 박씨네도 벌써 며느리가 애들 다 데리고 내려왔대."




서준이네 이외에도 많은 가족이


벌써 시골로 노약자와 아이들을 '피난' 보내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연일 명절처럼 붐비고 있었던 것이다.




"서준이는 여서 잘 돌봐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큰애가 더 걱정이죠. 하필 이럴 때 군대를 가버렸으니."




만식은 군대에 가있는 자신의 큰 아들, 민준을 염려하였다.


대학에 들어간 민준은 군대문제를


일찍 끝내겠다고 휴학하고 이른 입대를 결심했는데,


공교롭게도 군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전쟁 위기를 맞이했던 것이다.




"서준아. 이 사진은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된다."


"아빠. 알았어요."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만식은 서준이와 헤어지면서


손바닥만한 가족사진 한 장을 서준에게 쥐어주었다.


뒷장에는 가족의 이름, 생년월일, 출생지 같은 것이


만년필로 빼곡하게 써있었다.




이산가족 같은 재수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만식도 혹시 그런 사태가 벌어질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만식은 가족을 시골에 내려보내놓고,


씁쓸한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내려가는 길보다는 덜 막히고 있었다.


서울에 접근하자, 그래도 차가 많이 몰리면서 길이 막혔다.




길이 꽉 막히자, 만식은 운전석의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라디오에서는 매일같이 전쟁준비를 알리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미군이 10만명으로 증원됐다느니, 항모가 2척이나 배치되었다느니.


레이더로도 잡을 수 없는, 미군의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이야기도 나왔다.




전쟁 무기를 설명하는 라디오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마치


올림픽 같은 스포츠 경기를 앞두고 있는 듯이 흥분되어 있었다.




그 때, 콰아앙 하고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만식이 입에서 담배를 떨구고 밤하늘을 올려보자,


야간 비행하는 비행기의 불빛이 여러개 보였다.




비행기 불빛은 빠른 속도로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나타난 불빛은 눈 깜짝할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허. 저게 혹시?'




만식은 시커먼 북쪽 하늘을 가슴으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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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썻다가 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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