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8일 화요일

단편) 나라의 기둥

 단편) 나라의 기둥

ㅁㄴㅇㄹ(14.36) 2021.05.18 14:40:47조회 0 추천 0 댓글 0




조선 초 무렵, 태종이 태조를 맞이할 때의 일이었다.




태종은 왕위에 앉으려고 형제들과 다투고,


아버지 태조를 쫓아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태조는 태종을 미워하여 오랫동안 함흥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태종이 이에 부왕에게 미움받음을 서러워하여 마음에 병이 들 정도가 되었으나,


마침내 태조가 마음을 풀고 한양에 돌아온다고 하자 매우 기뻐하였다.




태종이 태조를 맞이하며 잔치를 크게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 때 대신 하륜이 말을 올리기를,


"점을 쳐보니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는데,


연회장에 '큰 기둥'을 세워두면 막을 수 있다 합니다."




하지만 태종은 이를 듣지 않았으니,


"내가 학문을 배웠거늘, 


어찌 술수하는 점괘를 함부로 믿겠는가?


아버님이 돌아오심이 곧 상서로운 일인데, 


어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겠는가?


연회를 베풀며 기둥을 세워두다니, 


그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하였다.






아 그리하여 태조가 한양에 당도하게 되자,


미리 멀리 밖으로 나가서 맞이하고


마침내 날짜를 잡아 잔치를 열었다.




그런데 잔치를 여는 곳에 들어와,


태종의 얼굴을 보자 마자 바로 그 때, 


태조의 눈에는 호랑이처럼 살기가 번뜩이고,


"이놈!"하고 소리치는데 하늘에서 천둥이 치는 듯 하였고,


숨겨두었던 활을 꺼내고 화살을 메겨서 겨누었다.




그러자 대신과 신하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어떤 자들은 오금이 저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하늘에서 번개불이 번뜩이는걸 피하려는 듯 하였다.




태조는 백발백중의 신궁(神弓)이시라.


평생동안 짐승으로는 범, 새로는 하늘 나는 수리,


호적(胡敵)˛ 왜구(倭寇)를 두루두루 잡았으니,


백보(百步) 이내에서는 화살을 피할 길이 없음이라.




태종이 목숨이 경각에 도달하자,


엎드려 "아버님 살려주십시오!" 하고 빌었으니,


태조 앞에서 염라왕을 만난 듯이 두려움에 떨었다.




태조가 태종을 노려보며 범같이 눈을 부릅뜨니,


사람들이 아찔하여 오늘 나라가 망하는구나 하였다.




그런데, 그리 위급할 때에,


나이 어린 왕자 막동(莫同)이 아장아장 걸어나와,


태조와 태종 사이에 우두커니 바로 섯으니,


할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손자가 가로막은 것이라.






태조가 암만 신궁(神弓)이라도 


손자를 쏘지 않고 아들을 쏠 수는 없으니,


"네 어찌 막느냐! 어서 비켜라!" 하고 


범처럼 울부짓었다.




그러자 왕자 막동이 비키지 않고


"어찌 아들이 아버지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할아버지께서 화를 푸십시오." 하였다.




어린 손자가 효성이 지극한 것을 보더니,


태조가 가슴이 울컥 하고 눈물이 솟아,


끝내 활을 쏘지 못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 했다.


우리 집이 큰 기둥을 얻었으니 오래갈 것이다." 하고,


한숨쉬듯이 내뱉고는 왕자 막동을 안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태종의 장남인 원자(元子)가 


무늬있는 비단옷을 입었으나 겁먹어 벌벌 떠는걸 보고,


"너는 담력이 없고 사치를 좋아하는구나.


크게 되지 못할 아이로다."고 하였다.




또 둘째 왕자가 자리에 붙은 작은 벌레를 멀리 풀어주는걸 보고,

어찌 벌레를 죽이지 않느냐 물어보고, 살생(殺生)하는 것은 좋지 않다 대답하니,


"내가 나라를 세우느라 살생(殺生)을 많이 해서 말년에 화(禍)를 받았다.


네가 자비심(慈悲心)이 많으니 장차 불사(佛事)를 전국에 널리해서,


내가 살업을 지은걸 씻도록 해라."고 하였다.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연, 하륜이 기둥을 세우면 화를 피하리라 한 말이 그대로 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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