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5일 목요일

중립한국 제13화)

 중립한국 제13화) 



시골에서 신년(新年)을 지내며 설날을 보내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대개 신력(新曆)인 서양력(西洋曆)으로 설날을 보내지만,

시골에서는 아직 구력(舊曆)으로 절기(節氣)를 쇠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양력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명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다니곤 하였다.


우리집 식구들도 한복으

로 갈아 입고,

큰집인 큰 할아버지 댁에 가서 인사를 올렸다.


지역 유지 답게 큰할아버지 댁은 주변에 사는 어르신들과

여러 친척들이 모여들어서 많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설날에 의찬이는 군복(軍服)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의찬이는 자신도 두루마리를 입으려 했지만,

큰 할아버지가 무관복(武官服)을 입은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여 군복을 입으라고 권고하고 있었다.


큰 할아버지는 모여오는 손님들마다

군복을 입은 의찬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랑하였다.


관직(官職)을 귀하게 여기는 양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옛날 사람들에게는 관인(官人)나 군인(軍人)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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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치직 치직-!


"이거, 산골이라 그런가? 전파가 잘 안잡히네…."


'나'는 사랑방에서 라디오를 조정하고 있었다.


큰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라디오는

내부 구조는 예전에 정부에서 농촌에 보급한

'국민 표준 라디오'로서 지금 도시지역에서는

다소 구식으로 취급받는 물건이었다.


국가정책으로 시골까지도

라디오 방송을 전파한다는 목적으로

몇몇 지역 유지에게 보내진 것이었다.


목재로 된 외판에는 상표 대신에

정부에서 보급된 물건임을 뜻하는

태극 문양까지 붙어 있었다.


구식 물건이었지만 큰 할아버지가

라디오의 목재 외관이 상하지 말라고

검붉게 옻칠을 하도록 했기 때문인지

흡사 고급스러운 장롱처럼 보였다.


라디오가 정부 보급품이기 때문에

나라에서 하사받은 물건이라고 무척 아꼈다.


시간표를 확인해보고 꼭 필요한 뉴스 방송만 듣곤 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신년사(新年辭) 방송이었다.


연두성지(年頭聖旨)가 발표된다고 하여

반드시 들어야 하니 라디오의 안테나를

조정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설날 아침 쯤에 라디오 신년사(新年辭)가 있다고 하여,

큰할아버지가 시간에 맞춰서 전파를 잡으라고 했기 때문에

라디오가 제대로 나오도록 조정해야 했다.


"형님! 나옵니까?!"


전파를 잡지 못하면 큰 할아버지가 크게 실망할 것이기 때문에,

의찬이가 지붕 위에 올라가서 안테나까지 움직이고 있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라디오에서 맑은 어린아이 목소리로 동요(童謠)가 흘러 나왔다.

신문의 라디오 편성표를 보니, 신년사 방송 직전의 음악방송 시간이었다.


"의찬아! 됐다. 조심해서 내려와라!"

"예!"


라디오 소리를 확인하고 밖에 나가서

지붕 위에서 안테나를 잡고 있던 의찬이에게 말했다.

의찬이는 새끼줄로 안테나를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날렵한 몸놀림으로 지붕에서 뛰어 내려왔다.


군사 훈련을 받았기 때문인지,

의찬이는 운동선수만큼 몸이 날렵하였다.


"어쩜 저렇게 날렵하대요.

뛰어다니는게 호랑이 같네."


"의찬 도련님. 군대 가기 전에는

장난만 치고 다니더니,

의젓하고 듬직하게 크셧네."


부엌문 쪽에서 여자들이 의찬이를 보고

소곤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찬이는 키도 크고 듬직하게 자랐고,

특히 군복을 입은 모습이 멋있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라디오 준비 다 됐습니다."

"어흠. 그래. 모두 사랑방에 모이거라."


내가 할아버지를 불러오자

부엌문간에서 수근거리던 여자들은

재빨리 부엌 안으로 얼굴을 숨겼다.


워낙 구식이라 내외(內外)하는데도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엄격하신 분이라

여자들이 남자를 쳐다보는 모습만 봐도

틀림없이 혼을 내려 할 분이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 댁 사랑방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들도 많았다.


노인들은 갓이나 정자관을 쓰고,

오래된 구식 안경을 끼고,

긴 곰방대를 들고 있어,

구식양반 같은 풍모였다.


이 많은 노인들은 대개 향청의 향임을 맡은 어르신들이었다.

큰 할아버지 댁의 사랑방이 이 지역에서 향청 건물처럼 쓰이고 있었다.


향청(鄕廳)은 동장(洞長)이나 이장(里長) 같은

향임(鄕任)을 맡은 지역 유지들이 모이는

향회(鄕會)인데, 시골에서 힘을 쓰는

지역 유지들이 모이고 있었다.


향회에서는 여러 시골 마을에 설치되어 있었고,

호적과 병역, 입학 등에 필요한 명부를 작성하고,

관청의 행정사항을 주민들에게 통달하거나,

지역의 현안을 관청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시골에서 군청(郡廳)이 있고 군수(郡首)가 임명되기는 하나,

군수로 임명되는 것은 대개 막 행정고시에 합격한

나이도 젊고 품계(品階)도 낮은 공무원이라서,

시골의 사정을 잘 모르고 권위도 부족했다.


도시의 행정에서는 양반이나 지주 같은건 퇴색된지 오래였지만,

시골의 행정에서는 아직도 향촌 양반들의 권위가 컷던 것이다.


군수조차도 부임할 때마다 향회에 인사를 하러 오곤 할 정도였다.


[얼마 뒤 9시부터 우리 황제(皇帝) 폐하(陛下)께서

신민(臣民)에게 하교(下敎)하는 연두성지(年頭聖旨)가 있겠습니다.

여러 신민들은 모두 의관(衣冠)을 단정히 하고,

고마우신 황제 폐하의 성지(聖旨)를 기다리십시오.]


음악방송이 끝난 다음, 신년사 방송이 시작되었다.


"신년사가 시작되었으니 모두 잡담을 금하고 엄숙하게 성지를 받들게."


'의관을 단정히 하라'는 방송이 나오자

큰 할아버지가 포고하듯 말하였고,

사랑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침묵한 다음

다같이 라디오 앞에 고개를 숙이고 꿇어 앉았다.


큰 할아버지도 라디오 앞에서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설사 라디오 방송이라 하여도

황실과 관련된 방송이 나올 때는

예의를 지키는 것이 법도였다.


자유주의적인 도시에서는 크게 엄격하지 않았고,

찻집 같은 곳에서는 황제폐하의 하교 방송이라도

그저 흘려 들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으나,

관공서에서는 방송 법도가 엄격하게 지켜졌다.


게다가 시골 양반들이 모인 곳이었으니 더욱 엄숙하였다.

비록 전화나 라디오 방송이라도 맞은편에 바로

황제폐하가 있는 것처럼 공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년사 방송은 국민의례(國民儀禮)으로 시작하였다.


국민의례에는 먼저 국기례(國旗禮)가 있어서,

라디오가 놓여 있는 벽의 윗쪽에다가 걸어놓은

황제 폐하의 어진(御眞)과 태극기(太極旗)를 바라보며,

국기에 충효(忠孝)의 맹세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황제 폐하의 어진(御眞)도 나라에서

시골 유지들에게 나눠준 것이었는데,

하사품이라 하여 매우 소중히 여겼다.


어진은 황제 폐하의 초상을 화가가 그리고 인쇄한 것이었는데,

여러벌 제작되어 관공서나 학교 같은데 배치되고 있었다.


또 향임을 맡은 지역 유지에게도 때때로 어진이 하사되곤 하였다.


[상제(上帝)는 우리 황제(皇帝)를 도우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그 다음으로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서

어르신들이 다같이 엄숙하게 애국가(愛國家)를 불렀다.


국민의례는 칭제건원을 할 때부터 소학교 때부터

여러 차례 해왔던 것이었기 때문에

몸에 익은 것처럼 할 수 있었다.


소학교 교육에서도 국민의례를

제대로 익히게 하는 것을

충효의 근간이라며 중시하였다.


머리가 둔해서 국기례나 애국가를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아이들은

외울 때까지 회초리를 맞기도 하였다.


[지금부터 성지(聖旨)를 낭독하겠습니다.]


의례가 끝난 다음에는 라디오 아나운서가 성지를 낭독하였다.


'정말 지루하구나….'


성지의 내용 자체는 언제나 그렇듯이 특별한 것은 없었다.


반 이상이 그저 말을 꾸미려는 미사여구였으며,

마치 소학교·중학교 때 매주 운동장에 나와서 듣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뻔하디 뻔한 훈계로

주목할 만한 내용이 거의 없었다.


연두성지 같은 성지는 관례적으로 매년 절기마다 발표되곤 했으며,

관공서나 학교, 회사에서 모여서 듣는 행사를 치르도록 하였으나,

대부분 별다른 내용이 없는 연설이었기 때문에 따분하였다.


노인들 조차도 정말 성지를 고맙게 집중하여 듣는 사람은

큰 할아버지와 몇몇 뼈대있는 양반 자처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대부분은 지루한지 손으로 안경이나 담뱃대를 슬쩍슬쩍 만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눈만 껌뻑 껌뻑 거리거나 시계를 슬쩍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굳이 큰 할아버지가 들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면

일부러 성지의 내용을 듣느라고 시간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작금의 구주정세가 혼란하고 병화가 

지극히 유감스러우며, 짐은 오직 평화(平化)를 바랄 뿐이도다.

우리나라의 중립시책은 오직 우리 국토(國土)가 병화(兵火)에 침범됨을 막고자 함이오,

그리고, 백성들이 살상되고 궁휼하는 것을 염려하여 내린 결단이니,

백성들은 자중(自重)하고 어리석게 경거망동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금 뜻밖에도 짧기는 하지만 시국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였다.


대개 성지 연설에는 훈계는 나와도

정치나 시국에 관련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뜻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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